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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한인 입양인’ 이슈에도 관심을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잊었던 한국인들’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 부모와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온 입양인들이다.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사람도 있고, 30대 언저리에 있는 젊은층도 적지 않다.     한인 입양인 숫자와 관련해 공식적인 집계 자료는 없다. 다만 미국 내에만 많게는 20만 명, 적게는 13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유럽에도 최소 5만~6만 명이 입양돼 이젠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의 1960~70년대는 궁핍의 시대였다. 생존조차 힘들어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홀트 등 해외 입양 기관들이 등장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체면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버려지거나 맡겨진 아이들의 새로운 호적과 여권이 속성으로 만들어지던 시기다.     문제는 구호와 자애의 이름으로 실제 고아가 아닌 아이들까지 불법적으로 입양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뿌리 찾기 작업을 통해 친부모를 확인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이런 부정행위를 인정한 경우는 아직 없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불법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유럽과 미국의 입양인 모임인 ‘덴마크한국인 진상규명그룹’은 자신의 입양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회원 372명의 케이스를 한국 정부 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화해위)’에 접수하고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화해위는 지난 5월 9일 일부 불법이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화해위 측은 총 367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고아로 분류됐던 30~50명은 친부모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고 공개했다. 다시 말해 부모의 존재로 인해 이들은 기아호적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정부가 호적 생성 허가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존재했던 친부모 관련 서류가 폐기되거나 생년월일, 출생지 등이 임의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입양인들의 주장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추정했던 우려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어서 입양인들은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더 철저한 조사와 추적이 필요하다.   한인 사회가 입양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입양인을 ‘한인’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전쟁으로 인한 아픈 상처로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싶어한다. 아니면 일부는 안쓰럽다며 관심을 보이지만 지원 문제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에 올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할 것이 더 많다. 홀트나 한국 정부를 비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인 사회는 10만 명이 넘는 입양인,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의 가족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권익을 위해  한국과 미국 정부 등 관계 기관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들 중 일부라도 입양 과정에 비리가 있었고, 이를 당시 한국 정부와 사회가 이를 묵인했다면 그들의 아픔을 풀어주는 것은 우리가 모두 감당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화해위는 관련 조사와 수사가 조속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부 부처들도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당함과 비리가 발견된다면 과감하게 처벌해야 한다. 만약 범법자들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사회적·윤리적 책임이라도 묻자. 그리고 이런 사실을 공개해 한국이 국제 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집단의 상처는 유산이 되고 장애로 남는다. 미국 내 입양인들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이는 미국인의 기억에도 고스란히 남는다. 그리고 이런 흔적은 한국이 반도체 왕국이자 BTS를 보유한 멋진 나라라는 생각으로도 지우기 힘들지 모른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입양인 한인 한인 사회 한국 정부 입양 과정

2024-07-02

[중앙 칼럼] 교회 기사 댓글 1200개에 담긴 메시지

전국 최대 영문 뉴스 포털 앱인 ‘뉴스 브레이크(News Break)’에 얼마 전 본지 기사가 게재됐다. 댓글만 무려 1200개 이상이다. 실시간으로 기사를 게재하는 뉴스 브레이크 특성상 이토록 많은 댓글이 달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본지 영문 기사의 제목은 ‘Hundreds of thousands leaving American churches amid declining Christianity(수십만 명이 교회를 떠나면서 기독교가 쇠퇴한다)’였다.    독자들은 기독교의 현실을 두고 개탄, 지적, 조롱 등 여러 감정을 댓글을 통해 표출했다. 본지는 후속 기사를 통해 10년 전 보도했던 존 맥아더 목사와의 단독 인터뷰 내용도 다시 끄집어냈다. 〈본지 5월7일자 A-16면〉   미디어에 비친 오늘날 교계는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독자들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신뢰를 잃은 교회가 뿌린 대로 거두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사회가 인식하는 교회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를 잃은 결과다.    먼저 교회 내에서 명확한 기준이 사라졌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계 인물로 꼽히는 존 맥아더 목사는 “교회가 성경을 잃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교회에 정작 성경적 기준 또는 예수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교회는 외부 영역을 ‘세상(사회)’으로 지칭한다. 구별의 의미가 담긴 표현인데 정작 교회는 세속화됐다. 교계에서는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인 ‘조용한 탈출(silent exodus)’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매력적이고 고차원의 지적, 유희적 산물을 끊임없이 생산 중이다. 그러자 흐름을 좇으려는 교회의 몸부림은 격렬해졌다. 예배 방식, 프로그램, 이벤트, 시스템, 방법론마다 독특한 명칭이 따라붙었다.     그중 명성을 얻거나 효과를 본 전략은 각 교회 사정과 환경에 따라 형태만 바뀐 채 너도나도 복사해 소비하기 바빴다. 그 가운데 교회가 늘 주창하고 고수해야 할 ‘진리’는 상대적으로 불분명, 아니 희미해졌다.   재미를 원한다면 굳이 교회까지 갈 이유가 있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목회자의 설교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기독교 외의 영역, 즉 ‘세상’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또 하나는 상식의 결여다. 오늘날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는 이 지점에서부터 심화했다. 그동안 교회는 윤리와 도덕을 필요 이상으로 영적인 개념과 연결해 왔다.     한국과 미국의 교계를 흔들었던 표절, 재정 비리, 성추행, 게릴라식 청빙, 세습 등은 신앙적 잣대로 바라볼 일도 아니다. 이러한 부조리는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기독교 내에서는 비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지면 존재적으로 ‘죄인’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변명했다. 행위의 동기를 신의 뜻으로 합리화하거나, 비판은 목회자 또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행위로 치부했다.   크고 작은 인간의 비윤리성을 두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으로 해석할 순 있겠지만, 이는 자칫 면죄를 위해 신분(죄인)만 내세우고 ‘죄’ 자체를 망각하는 오류를 낳는다. 이러한 대처는 결국 교회의 자정 능력 상실과 사회적 불신의 증폭으로 이어졌다.     본래 교회는 진리의 실체를 고찰하고 영원(구원)의 개념을 다루는 곳이다. 사회를 대상으로 우월을 증명하는 종교도 아니다. 특유의 가치를 드러낼 때 되레 영향력을 발휘한다. 연약할수록 강해지고, 새것보다는 바랜 것이 빛을 내며 죽어야 사는 역설의 가치를 내포한 게 교회다.   기독교는 특이하다. 행위 자체로 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신이 은혜로 인간을 찾아온다. 그 여정 위에서 세상과 공존하며 동시에 구별돼야 하는 게 교회다.   오늘날 사회는 교회에 거창한 걸 바라지 않는다. 큰 건물, 탁월한 프로그램,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 등은 더더욱 아니다.     비교인들이 기독교를 접할 때 묻는 건 단 하나다.     “도대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1200여개의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는 세상의 조소가 불편한가. 저 물음에 대한 답변이 너무나 중요한 시대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교회 존 맥아더 뉴스브레이크 장열 미주중앙일보 LA 로스앤젤레스 한인교회 청빙 세습 표절 기독교 개신교

2024-05-16

[중앙 칼럼] 미국의 반도체 굴기

2월21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가 열렸다.     “우리는 미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리콘을 다시 실리콘밸리로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화상으로 행사에 참석한 지나 러몬드 상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반도체 자국 우선주의’를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힌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전 세계 반도체의 80%를 아시아에서 만들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특정한 지역이나 국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10년 내 미국과 유럽이 세계 반도체의 50%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겔싱어가 우려한 건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이었다. 겔싱어는 “중국이 (2022년)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을 기억해보라. 이는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나는 대만을 좋아하지만 (공급망 관점에서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직후인 2022년 8월4일~7일 중국은 대만 주변 해역을 완전히 봉쇄하는 군사훈련을 했다. 실탄 사격훈련과 함께 둥펑 미사일 11발까지 발사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TSMC 반도체 생산공장을 파괴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   겔싱어는 중국이 대만을 흡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에 의존하는 반도체 공급망이 위험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응해 TSMC가 선택한 건 일본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것이었다. TSMC는 2월24일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1공장을 완공했고, 인근에 제2공장도 2027년 완공한다. TSMC가 일본을 선택한 것은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가 파격적인 보조금을 신속하게 지급했고 인력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러몬드 장관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만들려는 건 아니지만 인공지능(AI)에 필수적인 최첨단 칩은 직접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몬드 장관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미국의 거물급 테크 기업 CEO들은 인텔의 파운드리 지원에 나섰다.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등장한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MS는 미국에서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인텔의 노력을 돕겠다”며 “MS는 인텔의 1.8나노급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이 MS를 1나노급 공정 고객사로 확보한 것을 확인해준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반도체를 맡길지 밝히지 않았지만, 첨단 공정을 활용하는 만큼 AI반도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인텔은 올해 1.8나노급 공정에서 고객사와 설계, 제조를 시작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인텔 파운드리의 수주 금액은 MS를 포함해 150억 달러에 달한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고객 확보가 관건인데,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보다 앞서 AI 분야 선두를 달리는 MS의 손을 잡은 것이다. 겔싱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젠슨(젠슨 황 엔비디아 CEO), 크리스티아노(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 선다(선다 피차이 구글 CEO), 리사(리사 수 AMD CEO)도 우리 고객사에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는 인텔에 총 1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지원금을 지급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한 팀이 돼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인텔의 참전에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57.9%)와 삼성전자(12.4%),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6.2%), 대만의 UMC(6%), 중국의 SMIC(5.4%) 등이다.     “미국과 유럽이 세계 반도체의 50%를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겔싱어의 말은 인텔이 아시아 생산 물량의 30%를 빼앗겠다는 뜻이다. TSMC와 기술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 물량을 가장 먼저 빼앗아갈 가능성이 크다. 인텔의 부상은 한국에는 큰 위협이다. 이무영 / 뉴미디어 국장중앙 칼럼 미국 반도체 반도체 생산공장 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반도체

2024-03-10

[중앙 칼럼] 덕을 쌓고 복을 나누는 일

2023년 한 해도 벌써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는 고금리에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부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말은 연중 기부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지만 올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의 한 발표도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중산층 이상이 많은 어바인 지역도  거주자의  연간 기부금 액수가 소득의 2%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만 중위소득이 17만5012달러인 지역만 연 소득의 3.22%인 5635.38달러를 교회나 소외 계층을 위해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는 사회복지 및 사회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자원봉사 및 사회공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간주한다. 다양한 기부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남가주 한인 사회에는 ‘기부왕’으로 불렸던 고 홍명기 회장이 있었다. 고인은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 등 한인 사회의 역사를 알리고 보존하는 일은 물론 폐교 위기를 맞았던 남가주학원 살리기 등 차세대 육성 사업에도 항상 앞장서 지원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21년 별세한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분들이 많다.   1월7일 어바인에서 ‘금난새 신년음악회’를 여는 김종섭 서울대 총동창회장도 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다. 김 회장은 지난 18년 동안 모교인 서울대와 대한적십자 등에 약 140억 원을 기부했으며, 지난해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 성금으로 10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는 이번 ‘금난새 신년음악회’도 단지 동창 모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헌을 위해 나눔을 전하는 행사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음악회를 통해 재난 구호 성금 모금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한인 사회에도 기부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며 “나눔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복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덕이 쌓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부는 단순한 자금의 이동이 아닌, 사회적 가치의 전달과 연결,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 성장은 자본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사회의 계층화 현상을 낳고 있다. 기부는 이런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해 통합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기부 문화 확산에 젊은 세대가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인  MZ세대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더 내미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여론조사 기관 바나그룹이 2021년 전국 성인 21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개월 동안 자선단체에 봉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Z세대(1997~2012년)는 54%, 밀레니얼 세대(1980~1996년)는 41%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부모세대인 X세대(1960년대 중반~1970년대 후반)는 35%, 조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21%로 나타나  MZ세대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 속담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사회의 발전과 공익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분들이 많아질 때 한인 사회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부’라는 온정의 손길이 많아져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한 연말연시를 맞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내년은 올해보다 기부 활동이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예진 / 사회부 기자중앙 칼럼 연중 기부활동 한인 사회 사회개발 분야

2023-12-21

[중앙 칼럼] 도둑 떼가 들끓는다

LA에 도둑 떼가 들끓고 있다. 후디와 마스크, 망치로 무장한 떼강도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친다. 떼로 몰려다니며 부수고, 훔치고, 도망친다. 소셜미디어에는 거의 매일 이런 모습이 생중계된다. 제3세계가 된 것인가. 이들의 사전에 수치심은 없다. 옛날엔 도둑도 누가 볼까 봐 어두운 때만 움직여 ‘밤손님’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요즘은 대낮에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간 바지를 훔친 물건과 함께 추켜올리면서 도망친답시고 우버를 부르는 지경이 됐다. 떼강도를 잡겠다고 지난달 LA시정부는 셰리프국, 고속도로순찰대, 인근 도시 경찰국들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며칠 뒤 LA카운티 검찰과 가주 노동청은 임금 절도 전담 수사팀을 출범시켰다. 임금 도둑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수사팀은 첫 성과라며 자바시장의 한인 업주 2명을 중범죄 혐의로 기소해 한인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들 업주에 대한 비난과 온정 여론이 상존하는 것과 별개로 언제 수사팀의 칼날이 또 다른 한인 업주로 향할지 모른다.   한인타운에는 시민들을 무차별 촬영해 자존심을 도둑질하는 ‘폭력적인’ 유튜버도 있다. 본지가 최근 단독 보도한 이 유튜버는 거리와 업소에서 동의도 없이 시민들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영상 몇 개만 봐도 뒷목을 잡게 될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불쾌함은 어쩔 수 없다. 몇몇 게시판에 대응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나왔지만 분함을 참지 못한 일부 업주는 강하게 항의했다가 오히려 온라인에서 악플로 2차 피해를 보고 있다.   도둑 떼에 대한 불안함은 임계점을 넘었다. 무개념 유튜버를 경찰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월급 빼먹는 나쁜 사장을 고발해도 종업원 승률은 4%에 못 미친다. 고가의 골프채를 눈앞에서 강탈당한 골프숍 업주는 수사가 더디다며 좌절한다.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고 버틴 70대 아시안 여성을 질질 끌고 간 영상까지 있는데도 용의자는 무죄를 주장한다. 은행 앞에서 강도를 당할 뻔했는데 1시간 넘게 경찰이 오지 않아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를 가야 하는 세상이다. ‘제로 베일’은 차치하더라도 그만두는 검사들이 너무 많아 업무 적체는 어쩔 수 없다는 변명까지 들으면 말문이 막히고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다.   결국 어떤 이들은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중 하나가 최근 한인타운 버몬트 애비뉴 선상에 등장한 철창 구조물이다. 동물원에나 어울릴법한 모양새인데 건물 외벽과 바닥에 견고하게 고정됐다. 구조물 안은 한 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다. 안팎이 훤히 보이지만 철창 간격은 좁다. 지키려는 것은 건물 외벽에 설치된 ATM과 은행 손님이다. 이 구조물은 최근 어떤 한인 은행이 만들었다. 아마 데빗카드를 인식시키면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것이다. LA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인데 삭막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돈 뽑을 때 안도감을 줄 것이란 생각과 얼마나 도둑 떼가 무서우면 돈을 들여 저런 것까지 설치했을까 하는 우려가 엇갈린다.   낯선 이 광경을 ‘깨진 유리창 법칙’에 적용하면 아찔해진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누군가 다른 유리창을 스스럼없이 깨고 결국 그 건물은 황폐해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반대로 이 은행처럼 누군가가 먼저 집에 철창문을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 이웃들은 ‘행여 우리 집만 철창문을 안 달았다가 도둑이 들면 어쩌지’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모두가 철창문을 달고, 누군가는 더 두꺼운 철문으로 바꾸고, 다시 철문을 2중으로 겹쳐 닫는 모습이 미래의 LA이고, 한인타운이라면 어떤가.   이런 악순환을 막을 책임이 있는 LA시와 시의회, 검찰 등이 도둑 떼를 잡는 데 시간만 낭비한다면 결국 시민들은 그들을 ‘세금 도둑 떼’로 여길 것이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 칼럼 한인 업주로 최근 한인타운 한인 은행

2023-09-12

[중앙 칼럼] Z세대가 대학을 포기하는 이유

크레딧카드 부채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분기 크레딧카드 잔액은 2003년 조사 시작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정확히는 1조300억 달러다.   오는 10월 1일 학자금 대출 상환이 재개되면 카드 사용자들에게 더 큰 폭풍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갑자기 매달 400~500달러 학자금 대출을 다시 갚기 시작하면 직간접적으로 더 많은 카드빚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학자금 대출자의 70%가 주택 주 바이어층인 25~49세여서 주택시장이 더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부모가 예산을 줄이지 않는 한 가지는 자녀들의 과외활동이다. 대학입시에서 학업 성적 외 과외활동 같은 비학문적 성과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외활동은 스포츠, 악기부터 과학 올림피아드 대회, 코딩 수업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악기, 유니폼, 대회 참가비, 팀 간식 등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대학을 포기하는 Z세대는 느는 추세다. 지난해 대학 신입생 등록 수는 10년 전보다 400만 명이나 줄었다.     2010년부터 10년 사이 대학등록금은 연평균 12% 인상됐다. 전체 인플레이션이 연평균 2.6% 증가와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현재 공립대학교 4년 학비는 평균 최소 10만 달러, 사립대학교는 2배가 넘는 22만 달러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예상되는 급여는 대학 등록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졸 근로자의 소득은 지난 50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고등교육청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졸업 후 4년 동안 학생 중 3분의 1이 4만 달러 미만을 벌고 있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평균 급여인 4만4356달러보다 낮다.     대학 졸업생의 평균 학생 부채인 3만3500달러를 고려하면 많은 대학 졸업생은 대학 학위가 없는 졸업생을 따라잡는 데 수년이 필요하다.     대학의 가치와 비용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고등 교육에 대한 Z세대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 미국 대학을 신뢰하는 Z세대는 41%뿐이다. 모든 세대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Z세대도 대학생활에 대한 생각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 전형적인 대학 경험에 관심이 없다. 비판적 사고와 정보에 입각한 담론을 육성하는 인문학 교육에도 더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특히 경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들의 초점은 대학을 활용해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다. 이런 Z세대의 변화는 대학이 가르치는 과목을 바꾸고 있다.     컴퓨터 과학, 엔지니어링, 비즈니스, 보건 과학 등 더 나은 급여를 받는 직업으로 이어지는 학위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일례로 UC버클리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는 가장 인기 있는 전공으로 급상승했다. 최근 UC버클리는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컴퓨팅, 데이터 사이언스 및 사회 대학(CDSS)을 개설했다. 데이터 사이언스 학부 연구 프로그램, 통계학과, 컴퓨터 생물학 센터 등이 포함된다. 불과 5년 전 개설한 데이터 사이언스는 이제 이 대학에서 세 번째로 인기 있는 전공이다. 오하이오주 마이애미 대학교와 애리조나 주립대 같은 학교에서는 자신이 설계한 전공을 통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일부 숙련 기술 프로그램은 팬데믹 이후 등록률이 40%나 급증했다. 학생들은 또한 학위를 더 빨리 이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추가 과정에 등록하기도 한다.     팬데믹을 거치고 실리콘 밸리 빅 테크 회사의 대량 해고 사태를 목격하며 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직업에 대해 폭넓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Z세대들이 주체가 되어 삶의 다양성과 대학의 ‘본질’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 압박에도 부모들이 자녀들의 학업뿐만 아니라 비학문적인 과외활동에 대한 예산을 줄이지 않는 노력이 이들에게 중요한 자양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대학 대학 졸업생 현재 공립대학교 사이 대학등록금

2023-09-05

[중앙 칼럼] 폭염에 무방비 노출된 노동자·취약층

지난 주말에도 폭염과 열돔 현상으로 기온이 90도를 오르내렸다. 최근 수 주간 이어진 폭염은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전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개인들은 급증한 냉방비와 온열 질환 및 냉방병 등을 호소한다.   열돔 현상에 일부 지역은 종일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전기료가 평소의 1.5~2배 이상 나오는 가정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일반 가정에게 유틸리티 비용 급증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극빈층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10가구 중 1곳은 에어컨조차 없다. 에어컨을 구입하고 설치하는데 수천에서 수만 달러가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폭염은 극빈층의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불볕더위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폭염으로 경제 활동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생산성 역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무더위로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은 물론 회사를 관두는 근로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 운전자와 창고 근로자가 최근 파업에 돌입한 이유가 무더위 근무환경 개선이다. 캔자스주의 육가공 업체의 경우, 올해 그만 둔 인력이 평소보다 10% 많았는데 사직 이유는 폭염으로 알려졌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여러 연구 보고서를 인용 폭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짚었다. 신문에 따르면, 2021년 더위 노출로 인해 농업,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부문에서 25억 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손실됐다. 이로 인한 비용은 2050년까지 연간 500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폭염으로 세계 GDP(국내총생산)가  2100년까지 최대 17.6% 축소될 수 있다고 봤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의 폭염에 대한 대책은 매우 부족하다.     정부의 기후재난 취약층에 대한 대책은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과 쿨링센터로 집약된다.   문제는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금전적 지원은 적격 계층의 84%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보조금을 연구하는 미셸 그래프는 저소득층 적격 인구의 단 16%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기후재난 취약계층을 위해서 쿨링센터를 열고 있지만 일부 지역은 숫자도 부족하다. 더욱이 저소득층이나 몸이 불편한 주민은 센터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더 많은 적격 저소득층이 냉방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하며 교통편 제공으로 쿨링센터 접근성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쿨링센터를 지역 공공기관, 교회, 극장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노동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규정은 아직도 없는 상태다.   2년 전 바이든 정부는 연방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관련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까지 어떤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 뒤에는 기업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기업들은 휴식, 물, 그늘, 에어컨 설치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연방 정부 규정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가주를 포함한 일부 주가 더위와 관련한 노동자 보호 제도를 시행 중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기업이 의무 규정 도입을 반대해도 결국 폭염 관련 근무 여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엘니뇨로 인해 올해보다 더 덥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엘니뇨 현상은 적도 부근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일컫는다. 엘니뇨로  해수면의 온도가 섭씨 0.5도 올라가면 지구 온도는 0.2도 상승하기 때문이다.올해보다 더 더울 내년을 대비하기 위해서 정부는 법규정 마련과 취약계층 지원 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하고 기업들도 근로자 보호책을 세워야 할 때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 칼럼 무방비 노동자 기후재난 취약층 저소득층 에너지 근무여건 개선

2023-08-08

[중앙 칼럼] 멀어져 가는 ‘마이 카’의 꿈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 차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하는데 미국에서의 차는 가족과 함께 만들어 가는 추억의 소품 중 하나로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연방센서스국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가구의 91.7%가 최소 1대 이상의 차를 소유하고 있고 10가구 중 6가구는 2대 이상 차를 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생활필수품인 자동차를 장만하기가 팬데믹 이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반도체 칩 사태로 신차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차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요즘 신차 판매 광고를 보면 ‘헉’ 소리부터 난다. 구매는 물론 리스 비용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올랐나 싶을 정도다.     도대체 얼마나 올랐나 궁금해 구글링해보니 도요타 코롤라 기본형의 경우 1993년 1만2983달러에서 올해 2만1700달러로 8717달러가 인상돼 67%가 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가격과 비교해도 3000달러가 올라 16%가 인상됐다.     1993년 1만7578달러였던 중형차 캠리 기본형 역시 2만6420달러로 50%가 올라 인상 폭이 8842달러에 달했다. 팬데믹 전후로는 11% 또는 2575달러가 올랐다.   오토론 이자율 상승도 신차 장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40년 만에 찾아온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연준이 펼치고 있는 고금리 기조로 오토론 이자율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팬데믹 전에는 연중 실시하던 60개월 무이자 할부 프로모션도 종적을 감추었다가 최근에서야 일부 모델을 대상으로 할부 기간을 단축해 실시하기 시작했다.     신용점수가 좋으면 무이자로 구매할 수 있었던 차를 이제는 평균 9~10%가 넘는 이자를 더 내고 사야 하는데 차값까지 올랐으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도요타 웹사이트에서 2023년형 프리우스 프라임의 할부금 견적을 살펴보니 신용점수가 720점 이상인데도 60개월 할부 오토론 이자율이 9.07%로 나왔다. 690점 이상은 9.84%, 670점 이상 12.12%, 650점 이상은 12.87%이었고 600점 전후가 되면 18.04%로 급등했다.   신용점수가 아무리 높더라도 3만 달러짜리 신차를 60개월 무이자로 구매할 수 있었던 4년 전보다 7380달러를 더 내야 하니 결국 내 차 장만에 드는 총비용이 25%나 인상된 셈이다. 물론 현금 일시불로 구매하면 이자를 절약할 수 있겠으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부담 없이 몇만 달러씩 목돈 내고 신차를 구매할 수 있는 서민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차값, 이자율이 오르니 오토론 월 페이먼트도 2분기 평균 733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월 1000달러 이상을 내는 경우도 17.2%로 4년 전보다 300%가 뛰며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융자업체들이 불경기에 차입자의 연체 및 파산으로 인한 채무 불이행을 우려해 오토론 융자 신청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6월 오토론 거부율이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인 14.2%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처럼 차 장만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자 중산층 4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신차 구매를 미룬 것으로 밝혀졌다. 개스값도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서고 차 보험료까지 뛰고 있으니 빠듯한 생활비에 교통 관련 비용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특히 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나 장거리 통근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렘과 기쁨, 뿌듯함은 사라지고 부담과 걱정이 앞서는 ‘마이 카’ 장만이 뉴노멀이 되는듯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존재감이 남다른 생활필수품이 값비싼 기호품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마저 든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오토론 이자율 박낙희 신차 장만 차구매

2023-08-07

[중앙 칼럼] 미국인 모두가 자유로워 지려면

#컬러 블라인드   초등학교에서는 ‘컬러’에 대한 무감각을 훈련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피부 컬러’다. 피부색만으로 사람과 문화를 판단하거나 그 특징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의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옐로우, 블랙, 화이트 등을 언급하면서 서로 ‘인종 차별주의자(racist)’라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은 차별을 없애려면 우리 스스로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피부색을 구분 지어 정치, 경제, 문화,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은 물론 피부색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풍토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의 미국에서 그게 가능한 것일까. 우린 ‘피플 컬러 블라인드’가 될 수 있을까.     #어퍼머티브 액션   1961년 대통령 행정명령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 표현은 60년 넘게 소수계 인종에 대한 특혜의 상징이 됐다. 출발선이 다르고 박해를 받았으니 혜택을 주자는 취지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약자인 소수계에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미국인들의 생각도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퓨리서치가 지난해 12월 조사했더니 응답자 36%가 어퍼머티브를 좋다고 했지만, 29%는 나쁘다고 평가했다. 올해 봄에 조사한 내용에서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인종적인 구분을 입학 사정에 반영하는 것에 무려 50%가 반대하고 있다. 필요하다는 주장은 33%에 불과했다.  이제 따로 특혜를 주지 않아도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필요하다는 33%의 목소리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이들에겐 아직 차별이 상존하다는 반증인가.     #차별의 온도 차이   로욜라 메리마운트대에서 엔젤리노들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팬데믹 이후 인종 간 차별이 개선됐다(18%)는 답변보다 비슷하다(51%)가 더 많았으며, 오히려 악화됐다는 답변도 30%에 달했다. 연구는 여러 인종 간의 간극도 함께 측정했는데 아시안들 13.2%만이 인종 관계가 개선됐다는 답변을 내놨다. 흑인은 21%, 백인은 19%, 라틴계는 18%가 같은 답을 했다. 아시안 중 나빠졌다는 답변은 무려 38%로 인종별 답변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가 위협적인 상황에 놓인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답변 같아 보인다.     아시안 중에 한국인들을 따로 구분했더니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아시안 그룹 내 다른 민족에 비해 10~15%p 더 높았다. 인종 간 관계에 대해서는 9.6%가 개선됐다고 답했지만 악화했다는 답변이 무려 45%(타 아시아계 35%)에 달했다.  집을 구하거나 구직 상황에서도 차별을 경험했다고 주장한 비율이 더 높았다. 더 나아가 한인들은 아시안들 스스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냐는 질문에 32%가 그렇다고 답해 다른 아시안 그룹의 평균인 20%에 비해 높았다.     최소한 두 가지는 명확해진다.   한인들은 다른 인종과 민족 그룹에 비해 차별에 민감하다. 차별을 더 받고 있다고 믿는다.   둘째로는 우리 스스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차별에 민감한 것은 민권에 대한 의식이 높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남들을 차별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아니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입장과 태도를 달리하는 것일까.   주변에 보면 흑인과 라틴계 이웃들을 쉽게 여기는 한인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한 투쟁과 외침으로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들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 어떤 자격과 위치에서 그들을 멸시할 수 있을까.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의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 어떤 미국인도 자유롭지 않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도 컬러 블라인드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들도 우리를 인정해줄 것이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미국 인종 차별주의자 인종별 답변 인종적인 구분

2023-06-20

[중앙 칼럼] 입양인 친부모 찾기, 한인사회가 할 일은

지난해 말 본지는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룩킹포맘’의 세 번째 시즌을 마쳤다. 3년 동안 25명의 입양인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 온라인을 통해 전달했고 감사하게도 그 중 한명은 가족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입양인들 개인의 사연을 간헐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주기적인 영상 제작을 통해 입양인 소식의 허브 역할을 하고 교류하는 채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활동을 LA 중앙일보가 해야 하는지 궁금해한 독자들이 있었다. 실무를 진행한 책임자로서 입양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에게 ‘엄마 찾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 일에 LA 중앙일보가 왜 나섰는지 이 칼럼이 답이 되었으면 한다.     일단 이들의 숫자는 매우 많다.  1970~90년대 미국으로 입양온 한인 아동의 숫자는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 내 해외입양인  조력 기관과 단체들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이들 중 성인이 되어 부모를 찾으려는 경우는 20~25%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소 3만~4만 명이 서류를 정리해 한국을 찾거나 한국 기관에 노크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모를 찾아 재회의 기쁨을 누리는 비율은 이들 중 1%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들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있지만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막막한 작업’이었다. 지치고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간이 없다’다.  1970~80년대 입양된 이들의 친부모는 이제 70대이거나 80대에 접어든 경우도 있다.  이분들을 더 늦기 전에 만나고 싶다는 것이 입양인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아예 찾기 힘들거나 영영 손을 잡아 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정의의 문제다.  모든 입양이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입양아들 일부는 부당한 과정을 거쳐 ‘팔려간’ 경우도 있었고, 해외에 도착해 학대와 착취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과정은 부모를 찾는 일과 뗄 수 없는 것이다. ‘다 지난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자. 몇몇 운이 없었던 경우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내 아이와 가족에게 그런 부당한 처사가 있었다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또 하나 기억할 점은 ‘한인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사회는 그동안 입양인들을 포용하지 못했다. 줄곧 ‘이방인’으로 구분했고, 이민자와는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로 봤다. 그들이 한인사회에 발을 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15만 명이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가정해보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한인 10명 중 한명은 입양인이며, 이들이 최소 3인 가정을 꾸렸다고 보면 벌써 45만 여명 가량의 미국인이 ‘한인 입양인’ 가정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관과 단체가 2010년대부터 해외 입양인들을 초대해 각종 행사를 해왔지만 정작 이민 역사 120년을 보낸 우리 한인사회는 입양인들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다.     아픔과 슬픔을 갖고 있으나 이들에겐 무한한 잠재력도 있다. 뛰어난 능력으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입양인도 많고,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한인사회는 이들이 한인사회와 함께 발돋움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1세들도 유전자 등록에 동참하면 어떨까.  현재 가족과 만나는 가장 많은 경우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다. 40~50년이 지나면서 서류가 사라지거나 그 내용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친자 확인과 단서는 한국 경찰청의 유전자 시스템이다. 물론 상업적으로 알려진 유전자 등록 프로그램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우리 2세나 1.5세들이 등록한 유전자가 실마리가 돼서 가족을 확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각 지역 한인회에서 유전자 등록 캠페인에 나서주면 좋겠다는 것이 입양인들의 목소리다. 최인성 / 국장중앙 칼럼 한인사회 입양인 해외입양인 조력 한인 입양인 입양인 이야기

2023-03-19

[중앙 칼럼] 위기의 메디케어 증세만 해법 아니다

‘미국병’이라고 할 만한 것 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비싼 의료비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도 수천 달러는 기본이다. 입원 치료까지 필요한 상황이면 몇만 달러는 각오해야 한다. 고관절 수술을 받았던 한 지인은 병원비로 10만 달러가 청구됐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백내장 수술이 잘못돼 3번의 보완 수술을 받았다는 한 분은 회당 수술 비용이 4만 달러나 됐다고 했다. 한 분은 메디케어, 한 분은 직장건강보험 덕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병원비만 비싼 게 아니다. 약값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해외 치료’로 눈을 돌리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한인들이 건강검진이나 급하지 않은 수술을 위해 한국에 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의료적 이유로 멕시코를 찾는 미국인이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조사도 있다.     전문가들은 복잡한 의료 체계와 병원,보험사,제약사의 폭리를 의료비 상승의 이유로 꼽는다. 문제는 원인은 아는데 한 방에 해결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 카르텔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산층이다. 저소득층은 메디케이드(가주는 메디캘)나 오바마케어 혜택으로, 고소득층은 비싼 건강보험 가입으로 걱정이 해결되지만 중산층은 기댈 곳이 없다. 그러니 65세가 돼 메디케어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이젠 한시름 놓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메디케어가 위기를 맞고 있다. 기금 부족이 문제다. 현 상태라면 2028년에는 메디케어 트러스트 펀드(Medicare trust fund)가 바닥날 우려가 있다고 한다.     메디케어는 자격이 되는 65세 이상 시니어와 장애인들에 제공되는 의료 혜택이다.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국(CMS) 자료에 따르면 현재 메디케어 수혜자는 6500만 명, 연간 예산 규모도 9000억 달러에 달한다.  연방정부 전체 예산의 7.5% 이상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고령화와 수명 연장으로 수혜자는 늘고 의료비는 오르면서 기금 고갈의 상황에 부닥쳤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NYT)에는 이색 기고문 하나가 실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다름 세대를 위한 나의 메디케어 연장 계획(My Plan to Extend Medicare for Another Generation)’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메디케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며 공화당의 지지를 바란다는 내용이 골자다. 연 소득 4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의 메디케어 세금 세율을 기존 3.8%에서 5%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안이 시행될 경우 2050년까지는 현재 혜택 수준으로 메디케어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내용은 바이든 대통령이  9일 공개한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담겼다.     세금을 올리겠다는데 공화당 측이 찬성할 리가 없다. 공화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즉시 말도 안 된다며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 안이 통과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공화당은 메디케어 개혁을 들고 나왔다. 지금의 운영 시스템으로는 낭비 요소가 너무 많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서비스를 줄이고 방만한 운영을 효율화하면 굳이 추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 사항은 불법·편법 행위로 인한 손실이다. 종종 메디케어 치료를 허위 또는 과다 청구했다 적발된 사례가 알려지지만 실제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전문 단속기관의 분발이 필요하다.        메디케어는 사회보장연금과 함께 시니어들에는 필수 안전망이다. 당연히 시니어들은 제도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세금을 올려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든, 운영 효율화로 낭비를 줄이든 혜택의 유지 내지 확대를 원한다.     미국의 정치 시계는 이제 2024년 대선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바이든의 증세 안으로 메디케어 이슈가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선거용’ 대신 수혜자를 위한 공방이 되어야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중앙 칼럼 메디케어 위기 메디케어 혜택 메디케어 연장 메디케어 트러스트

2023-03-09

[중앙 칼럼] 호신술 배우는 집주인들

‘LA의 랜드로드들이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근 USA투데이의 기사다. 만약 이 제목을 봤다면 대다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집주인도 힘들겠지. 받지 못한 렌트비가 늘면서 재정난을 겪을 테니 말이야. 랜드로드들이 부동산을 지키려고 나선 모양이군”이라고.   그러나 기사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싸우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맨몸으로, 흉기로, 총기로 위협당할 때 생존하기 위해 대응하는 법을 익힌다는 기사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LA지역아파트협회(AAGLA)는 집주인들과 부동산 관리자들로 구성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협회는 최근 보건 및 안전 전문가를 고용해 최초로 폭력비상대응교육(AVERT)을 실시했다. 훈련 또는 수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이번 교육은 호신술, 생존술 습득에 가까웠다.   교육에서는 언어적, 신체적 공격을 받을 때 대처하는 방법들이 소개됐다. 특히 퇴거를 통보받은 뒤 이를 거부하는 세입자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과 그 결과로 집주인은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당연히 공격을 당했을 때 회피하는 기술과 공격자를 저지하는 요령, 총기 난사 상황이 벌어졌을 때 숨는 법, 출혈이 생겼을 때 지혈하는 노하우 등이 자세히 소개됐다.   훈련 교관은 집주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행히도 미디어는 우리를 ‘악’으로 묘사합니다.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보금자리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가진 마지막 것을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최악의 날일 것입니다. 겁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한바탕 소동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정치의 부재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이 도시에 사는 진짜 시민들을 위한 정치가 없음을 깨달은 뒤 느낀 씁쓸함이다.   LA는 렌트 세입자들의 도시다. 센서스 통계상 LA 시민의 주택 보유율은 36.9%에 불과하다. 가주 전체 44%에 못 미친다. 10명 중 6명 이상은 세입자인 셈이다. 그러나 선출직 정치인들의 구성은 그렇지 못했다. 긴 시간 LA 정치권은 인종, 성별, 성정체성 등에 대해 집중하며 다양성을 이뤘다. 대신 렌트 세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가난의 문제로 치부됐다. 랜드로드인 시의원들이 세입자 보호에 인색했던 사례는 넘쳐난다. 세입자가 정치한다는 건 생소했다.     다수를 차지하지만, 정치권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온 세입자들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점은 그래서 반갑다. 자기 집이 없는 휴고 소토-마르티네즈는 미치 오페럴을 꺾고 LA시의회에 입성했고, 린지 호바스는 LA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에 안착했으며, 케네스 메히아는 LA시 회계감사관에 뽑혔다. 대학을 졸업해도, 고소득을 올려도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루기 힘들어졌음을 깨달은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폭넓은 연대를 원하며 행동에 나선 결과다.   가주 하원은 최근 ‘렌터 코커스’를 구성했다. 80명의 의원 중 세입자는 3명뿐이지만 의미 있는 첫발이란 평가다. 집이 없는 정치인을 더 많이 뽑았어야 할 타이밍이 어쩌면 지났을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동병상련의 정책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본인이 집을 가진, 또는 랜드로드인 정치인들도 이렇게 달라진 표심을 읽어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 도시에는 누가 사는가?’에 집중한다면 집주인들이 호신술을 배우는 촌극은 최소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 칼럼 호신술 집주인 호신술 생존술 렌트 세입자들 세입자 보호

2023-03-05

[중앙 칼럼] 생각을 바꾸면 없던 기회도 생긴다

‘3M의 포스트잇’과 ‘베이비캐럿’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탄생의 기원이 발상의 전환에서 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베이비캐럿은 따로 존재하는 품종이 아니다. 베이비케럿의 탄생 과정은 이렇다. 1985년 가주의 한 농부는 공들여 재배한 당근 10개 중 적게는 3개, 많게는 4개를 마켓에 납품할 수 없었다.  품질은 괜찮은데 못생겼거나 작은 흠집으로 상품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성 들여 키운 당근이 소비자의 식탁에도 오르지 못한채  버려져야 한다는 현실에 농부는 고민이 컸을 것이다. 그런 그의 고민은 못난이 당근을 2인치 크기로 잘게 잘라 껍질을 벗겨 포장해 베이이캐럿으로 판매하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의 호응은 예상 밖으로 컸다. 현재 유통되는 당근의 70%가 베이비캐럿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일반 당근 하나로 보통 베이비캐럿 4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한 농부의 발상 전환이 큰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베이비캐럿처럼 농부가 생각을 바꾸니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겼고 1년 내내 고생해서 수확한 채소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뿐만 아니다. 잊힌 세대인 X세대(1970년~79년생)를 주요 고객군으로 타깃하고 마케팅을 펼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위스콘신주의 의류업체 랜즈엔드는 모두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MZ세대에 역점을 둘 때 X세대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업체다. MZ세대는 밀레니얼세대(1981~1995년생)와 Z세대(1996~2012년생)를 동시에 일컫는 한국식 신조어다.   랜즈엔드의 주요 고객군은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으로 교외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였다. 하지만 약 6년 전부터 핵심 고객층이 줄기 시작했다. 이에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MZ세대 공략에 나섰지만 오히려 기존 고객층이 이탈하면서 위기감만 커졌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잊힌 세대인 X세대 공략이었다. X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제품 개발 및 판매에 주력했다. 이런 마케팅 덕에 신규 고객의 75%가 지난 5년 동안 랜즈엔드 제품을 사지 않았던 X세대였다.   생각을 바꿔 큰 성공을 이루는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포스트잇은 발상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다. 1970년대 스펜서 퍼거슨 실버라는 3M 연구원은 초약력 접착제 ‘마이크로스피어’를 개발했다. 마이크로스피어는 접착력을 유지하면서도 표면을 손상하지 않고 떼어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런 장점에도 접착제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통념 탓에 상품으로 개발되지 않았을뿐더러 3M도 마이크로스피어를 상품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이크로스피어는 실패한 프로젝트로 남아 있었다. 이후 3M 엔지니어 아서 프라이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마이크로스피어는 빛을 보게 된다.   그는 찬송가 책에 끼워둔 서표가 바람에 자꾸 바닥에 떨어지자 종이 표면을 손상하지 않고 접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미 개발된 마이크로스피어에 대해 알게 됐다. 프라이는 마이크로스피어를 이용, 메모를 작성해 쉽게 붙이고 떼어낼 수 있는 메모용 종이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3M은 포스트잇 제품을 개발하였으며, 1980년에 출시됐다.   포스트잇은 출시되자마자 사무실의 인기  문구 제품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제품이 됐다. 프라이가 마이크로스피어의 용도를 재발견하지 않았다면 3M의 효자상품인 포스트잇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나 역발상 모두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생각을 바꿔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있다. 이때 좌절하지 않고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의외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창의력의 시작은 바로 발상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 칼럼 생각 기회 포스트잇 제품 비즈니스 기회 제품 개발

2023-02-28

[중앙 칼럼] 고객 신뢰 잃은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오는 4월부터 시행하려던 스카이패스 마일리지 개편 때문에 연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소비자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에서 조차 ‘소비자 입장은 무시한 개악’,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 ‘개편안 철회’ 등의 비난과 요구가 쏟아졌다.     개편안 비난에 대응하는 대한항공의 변명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2019년 보너스 항공권 이용객 4명 중 1명 만이 장거리 노선을 이용했기 때문에 중·단거리 노선 혜택을 늘리고 장거리 노선 혜택을 축소한 개편안으로 다수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식이었다. 수치상으로는 대한항공의 주장이 맞을 수 있겠으나 그렇다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단거리 노선의 경우는 다수의 저가항공사가 저렴한 항공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어렵게 적립한 마일리지를 써가면서 보너스 항공권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시즌에 따라 1700~2800달러까지 치솟는 LA-인천 노선 등과 같은 장거리 노선 이용 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1달러 사용시 1마일을 적립 받기 위해 100달러에 육박하는 연회비를 내가며 스카이패스 크레딧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미주 한인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개편 후 보너스 왕복 항공권 공제 마일리지가 LA-인천 노선은 1만 마일, 뉴욕-인천 노선은 3만 마일씩 더 차감된다니 크레딧카드로 1만 달러, 3만 달러를 더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비즈니스석인 프레스티지석은 LA-인천 노선 3만 5000마일, 뉴욕-인천 노선 5만5000마일을, 일등석은 8만 마일, 11만 마일을 각각 더 공제한다니 일 년에 한 번 한국을 다녀올까 말까 하는 한인들에게는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 됐다.   네티즌들도 본지를 비롯한 언론들의 대한항공 비판 보도에 찬동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D Ciderhouses는 “수십 년 동안 애용해온 고객을 기만했다. 머나먼 타국에 오갈 때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해서 대한항공을 애용한 충실한 고객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즉시 마일리지 개악을 취소하라”고 성토했다.   급기야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개 비판을 통해 원천적 불만 해소를 요구하는 등 정부, 정치권에서도 가세하자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전용 좌석을 확대하고 6~10월 사이 LA, 뉴욕, 파리노선에 특별편 100편 투입, 내년 2월까지 미주노선 마일리지 좌석 최대 80% 확대 등 개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역시 국토교통부에서는 “미흡하다”, 공정위에서도 “개편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등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대한항공은 지난 20일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사실상 개편안 시행 유보를 발표했다.   아시아나 합병을 앞둔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부채로 간주되는 마일리지 부담을 줄여야 한다지만 고객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개악’이 최선의 방안이었을까.     마일리지 프로그램은 고객 유치를 위해 내건 대한항공의 약속이요 소비자와의 계약이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가치절하는 강탈과도 다름없는 갑질이다.   조원태 대한한공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고객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며 회복하기도 정말 어렵다”고 강조하며 “고객에게 안전하고 감동적인 여행을 선사하기 위해 하늘길에 비행기를 띄우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임직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항공 전문매체 에어트랜스포트 월드(ATW)가 ‘올해의 항공업계 리더’로 조 회장을 선정했다. ‘최고의 전문가들’답게 상심한 고객들을 아우르며 신뢰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 칼럼 대한항공 고객 미주노선 마일리지 대한항공 비판 마일리지 보너스

2023-02-21

[중앙 칼럼] 상조회 해산에 담긴 의미

상부상조는 서로서로 돕는다는 말이다. 상부도 서로 돕는 것이고, 상조도 서로 돕는다는 의미다.   우리에겐 상부상조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도 상부상조에 해당하는 일들이 많다. 한인 단체들이 골프 대회를 통해 서로 기금 마련을 도와주는 것, 각종 행사를 열 때 서로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주는 것도 그 예다. 개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따지고 보면 상부상조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잘 알고 지내며 전입과 전출이 매우 드문 농경사회 또는 직장을 비롯한 소규모 공동체에 적합하다. 미국에 사는 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한 상부상조의 대표적인 예가 계와 상조회다. 계는 구성원들이 꼬박꼬박 곗돈을 내고, 또 구성원 중 누군가 돈을 챙겨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 상조회도 누군가 사망했을 때 회원들이 정해진 상조금을 내고, 상조회 운영 주체가 기금을 잘 관리할 것이란 신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오렌지카운티에 한인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중반 이후 오랜 기간 한인사회는 이른바 메인스트림과 겉도는 일종의 섬과 같았다. 자연스럽게 교회, 한인회를 중심으로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계와 상조회가 잇따라 생겼다. 그런데, 이후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먼저 사회적 파장으로 주목받은 건 계다. 지금이야 대규모 계는 찾아보기도 어렵게 됐지만, 15~20년 전만 해도 미국의 한인사회 곳곳에선 계로 인한 피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개중엔 계주가 다른 이의 이름으로 여러 계좌를 만들고 수차례 회원들의 돈을 받은 후 잠적하거나 1명이 여러 계에 들고 돈을 받는 시점을 조정해 목돈을 챙겨 달아난 경우, 수년에 걸쳐 인간관계를 맺은 뒤 대규모 계를 조직해 거액을 받고 도망치는 사례도 있었다.   미국 법으로 보호받는 것조차 어려운 계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입한 이 중엔 신분, 세금 문제로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이도 많았다. 이런 문제는 한인사회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개인의 상황도 안정되고 한인 은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상조회 관련 문제도 2000년을 전후해 불거지기 시작했다. 회원이 줄어 상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거나 상조회 운영진이 기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규모 상조회의 경우, 기금 유용보다는 회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한인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시니어 인구도 함께 늘자 곳곳에 생긴 상조회는 이민자가 감소하는 와중에 회원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자 차례로 한계에 직면했다.   33년 역사를 지닌 OC한미노인회 상조회도 지난달 해산 결정을 내렸다. 상조회 해산은 어쩌면 예고된 비극이다. 노인회 상조회 측에 따르면 회원 수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시점은 2017년 즈음이다. 노인회는 총회를 열어 회원들에게 어려움을 알리고 월 10달러씩 회비를 걷기로 해 급한 불을 껐다. 이후 엄습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상조회 해산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신규 회원 가입이 드문 가운데 고령 회원의 별세가 잇따르자 적립한 기금이 급속도로 감소한 것이다. 결국 노인회는 상조회 회원 다수 의견에 따라 상조회 해산을 결정했다.   노인회 상조회의 해산은 회원 외에도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동시에 시대적 변화란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일깨웠다.   계와 상조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다. 유용하고 좋았던 것도 시대가 변하면 현재를 떠나 과거가 된다. 함께 떠나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부상조의 전통이다. 임상환 / OC취재담당·부국장중앙 칼럼 상조회 해산 상조회 운영진 상조회 관련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

2023-02-20

[중앙 칼럼] 유권자 표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지금은 그래도 나중엔 고마워할 거에요.”   11년 전인 2012년 가을 일본인 대니얼 이노우에의 이야기를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강석희(현재 연방조달청 서부지역 국장) 전 어바인 시장이 시장직을 연임하고 연방하원 45지구에 출마했을 때이다. 역대 두 번째의 한인 연방의원이 탄생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인사회 관심이 뜨겁던 때다. 기자는 칼럼에서 전쟁 영웅으로 소수계이자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한 이노우에와 하와이 일본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진정한 애국 정치인’이 주는 교훈을 강 전 시장도 본받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집단 수용소에 가야 했던 일본인 2세 이노우에는 이후 의대를 졸업하고 자원 입대해 군의관으로 유럽 전선에 파견됐다. 작전에 나간 이노우에는 전투 중 팔을 잃고 하와이로 돌아온다. 장애로 인해 의사의 길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이후 정치학으로 진로를 바꿔 1962년 하와이주의 첫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칼럼이 지면에 인쇄된 다음 날 어바인 시의회에서 만난 강 전 시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시의회 한구석으로 기자를 이끌더니 그는 “최 기자 좀 서운하다”는 말을 했다. 당시 가뜩이나 상대 진영이던 존 캠벨 의원(공화)이 그를 ‘카펫 배거(carpet bagger)’라고 비난하던 시기다. 카펫 배거는 화려한 언변이나 출신을 강조하며 표를 구걸하는 뜨내기 정치인들을 비꼬는 표현으로, 정치적 뿌리가 깊지 않고 세력이 크지 않았던 소수계 후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었다.     강 전 시장은 “이래저래 힘에 부치는 선거판에 너무 엄격한 잣대로 한인 언론에서 비판을 하니 힘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선거는 졌지만 정작 그에게는 ‘쓴 약’이 됐다. 적어도 캠페인에 참여하고 가깝게 지켜봤던 한인들은 이노우에 이야기로 새로워지는 시간이 됐다는 반응이 기자에게 되돌아 왔다.     당시 섀런 쿽 실바 주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박동우 보좌관은 기자에게 “지금은 따가운 비판으로만 들려서 불편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강 시장도 칼럼 내용에 고마워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 보좌관 역시도 지역에서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표심을 얻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고, 이름만 내세우거나 갑자기 이사를 가 한인들의 표를 독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후보들이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강 전 시장은 이후 주 상원의원 도전에 실패하고 후진 양성에 나서는 한편 최근 연방 공무원직을 맡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마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계속 출마할 것이며 가가호호 노크를 하게 될 것이다. 최근엔 가주의 연방 상원의원 한 명의 은퇴가 다가오자 우후죽순 격으로 출마 선언이 잇따른다. 모두 자신이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후보들 스스로 ‘카펫 배거’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순수하게 시민들과 봉사활동을 함께한 적이 있는지, 지역구 내 풀리지 않는 민원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고통받고 힘겨워하는 이웃들의 손을 잡아 본 적은 있는지 말이다.     물론 현명한 유권자들이 잘 골라내겠지만 당선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표만 얻으면 된다는 셈법은 곤란하다. 이는 커뮤니티 역량의 낭비이자 안 좋은 선례가 된다.     선량들이여 내년 가을 멋진 당선을 바란다면 이노우에의 잃어버린 팔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새겨볼 일이다. 그래야 나중 스스로에게 고마워할 수 있을 것이다. 표는 적어도 ‘줍는(pick up)’ 게 아니라 진심으로 노력해서 ‘얻는(earn)’ 것이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유권자 방법 어바인 시장 한인사회 관심 뜨내기 정치인들

2023-02-12

[중앙 칼럼] ‘무모한 도전’이 위험한 이유

뉴스를 접할 때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아무개가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가 실종됐다. 아무개가 설산에서 길을 잃어 목숨을 잃었다.’ 스스로 산에 올라 목숨까지 바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굳이 힘들게 찾아가 사고를 자초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등산뿐인가. 인간이란 동물은 까딱하면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행위에 ‘미친 듯’ 덤벼든다. 미디어는 도전 정신을 높이 사며 비보도 전한다. 매년 슬픈 소식이 반복되지만, 신기하게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죽음을 각오한 호기심과 도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캘리포니아주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PCH) 1번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1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색다른 볼거리가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다. 파도가 넘실대는 곳에서 펭귄이나 물개 떼마냥 검은색 무리가 둥둥 떠 있다. 잔잔한 파도 위에 넘실대는 모습일 때는 ‘그까짓 거 나도 한 번!’이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5~10피트(2~3미터) 높이의 거친 파도에 검은 무리가 초토화될 때면 ‘아이고~!’라는 감탄과 두려움이 몰려온다.   서핑은 오묘하다. 물과 파도, 눈에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다. 보드 위에 앉아 있으면 세상 평화롭고, 파도에 휩쓸리면 숨통을 조여온다. 서핑보드에서 균형을 잃고 파도에 휩쓸린다. 발은 밑바닥에 닿지 않는데 정신없이 때려 치는 파도의 힘이란…물 공포는 언제 겪어도 두렵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세탁기 옷감처럼 ‘통돌이’ 할 때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본능이 발동한다.   위험요소는 또 있다. 백상어다. 캘리포니아 해변은 새끼 상어의 놀이터란다. 드론을 띄워보면 새끼 상어(8~10피트)가 모래사장 가까이까지 접근해 유유히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 새끼 상어는 웻수트를 입은 검은 서퍼를 물개로 착각해 물기도 한다. 뼈가 많은 인간은 식감이 별로라며 뱉어내지만,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서퍼의 대응은? 송사리가 무리 지어 다니듯 ‘한 데 모여’ 위험요소를 최소화할 뿐이다.   자연의 힘은 순식간에 인간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른다. ‘정복’을 위한 담대한 도전이라고 미화한다. 과연 그럴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임은 본인이 잘 안다. 무섭고 두렵다. 그럼에도 과정에서 느끼는 내면의 평화와 희열은 참 강렬하다. 거친 파도에 휩쓸려 숨통을 조여오는 5~10초 동안, 공포와 평화를 동시에 느꼈다고 말하는 식이다. 위험이 지나고 숨통이 트이면 겸손과 감사도 배운다.   심리학에서 호기심과 도전은 ‘새로운 자극’을 찾도록 인간을 극한 상황으로 내모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최근 한 달 사이 마운틴 볼디에서 구조된 사람만 약 15명이다. 사망자도 2명이 발생했고 1명은 실종 상태다. 실종 58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75세의 한인은 설산의 아름다움에 취했고, 두려움 대신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전했다. 극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그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달관이다.   자연의 힘에 도전하는 자세는 달관이란 깨달음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를 준다. 기억할 것은 ‘목숨’이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샌버나디노카운티 셰리프국은 “마운틴 볼디의 겨울 산행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제발 자제해 달라”고 읍소할 정도다.     자연이 호기심과 도전을 자극할 때면 ‘목숨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무모 도전 도전 정신 캘리포니아주 퍼시픽코스트 새끼 상어

2023-02-07

[중앙 칼럼] ‘어떻게’가 빠진 총기난사 예방 대책

모두가 동기가 뭐냐고만 묻는다. 역시나 왜(Why)에만 집중한다. 어떻게(How)는 실종됐다. 자주 봐온 상황전개. 몬터레이 파크와 하프 문 베이 총기난사 사건 이야기다. 거의 모든 미디어, 정부기관, 수사당국, 커뮤니티, 학자, 한국의 지인들도 총격범이 ‘왜’ 그랬는지 궁금하단다. “옆집 부부 싸웠대”를 들으면 “왜 싸웠대?”로 받아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하지만 궁금증을 가장해서 ‘우리 부부는 안 싸웠지’란 점을 대리만족하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다.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가장 동기에 집착하는 쪽은 총기회사나 총기 옹호론자다. 잘만 알아내면 총기 규제 목소리를 희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을 더 해 차량 급발진 사고가 나면 운전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자동차 회사처럼, 총기회사는 총격범의 개인적인 문제가 대두하길 원한다. 이런 식으로 거의 예외 없이 총기난사 사건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간 심리와 이익단체가 만든 프레임이 이끄는 대로 종결됐다. 이번 비극도 총격범의 범행 동기를 좇는데 에너지를 다 쓴 뒤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라는 담론은 또다시 흐지부지 사라질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안쓰러운 건 재발을 막고 예방을 위해 ‘어떻게’에 집중하는 총기 규제 찬성론자들조차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부분이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통계에 쉽게 당한다. 이번에도 ‘새해 들어 벌써 38건’, ‘100명당 125자루 총기 보유 세계 최대’, ‘10만 명당 총기난사 사망 4건 세계 1위’ 등이 즉각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놓은 듯, 몇 달 전에 봤던 것보다 더욱 자극적이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은 쉽게 휘발해 버린다. 특정 자극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둔감해지니까. 10초도 안 되는 짧은 길이의 틱톡 영상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이런 자극은 관심 밖이다.틱톡을 몰라도 이런 식의 통계 자극에 자주 노출되면 반응의 강도와 빈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면 이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안정감을 유지하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   재발을 막을 방법론을 고민해봤다. 누군가 범행 동기는 열심히 찾을 테니 그 결과를 가지고 단계별로 예방책을 켜켜이 쌓아두면 어떨까.   프랑스 영화계의 극단주의자인 가스파 노에 감독의 2002년작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에 대입하면 좋겠다. 주제와 소재, 표현 수위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이 영화는 거꾸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처럼 난해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영화의 시작이 사건의 결말이고, 끝이 스토리의 시작이란 이야기다.   노에 감독은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주제에 맞게 10여분 길이로 챕터를 나눠 시간의 역순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챕터가 나뉘는 편집 점은 선택 직전의 순간들로 이미 영화 시작과 함께 잔혹한 결말을 본 관객 입장에서는 ‘이때라면 돌이킬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들게 한다.   이번 두 사건도 시간의 역순에 맞춰보면 예방 노력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총격범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현장에서 누군가 막았다면, 잠재적인 난사범이 대량살상 무기를 살 수 없게 제도적으로 규제했다면 어땠을까. 더 근본적으로 정치권이 232년 전 만든 수정헌법 2조를 개정했다면, 하다못해 총기규제법이라도 강화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좀 더 과거로 올라가 용의자가 괴롭힘당하지 않도록 주변이 배려했다면, 증오심을 키우지 않도록 누군가 호의를 베풀었다면, 나이 든 이민자가 느끼는 소외감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어쩌면 비극은 막았을지 모른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 칼럼 총기난사 예방 명당 총기난사 베이 총기난사 총기난사 사건

2023-01-29

[중앙 칼럼]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대와 우려

올해 IT업계는 물론 거의 전 분야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게 바로 오픈 AI가 만든 생성형 챗봇 ‘챗GPT’다. 챗GPT는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우수하다. IT업계의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렇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냈다. MS는 빙의 검색엔진에다 대화형 챗GPT의 기술을 접목해서 구글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챗GPT가 무엇이기에 업계에선 이 난리일까. 챗GPT에게 직접 물어봤다. 영어로 질문하고 한국어로 답하라고 했더니 이렇게 반응한다.   “저는 오픈에이아이에서 훈련된 대용량 언어 모델입니다. 사용자가 입력한 글을 이해하고 관련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책, 기타 출처 등을 포함한 대용량 텍스트를 데이터로 사용하여 개발되었으며, 의도를 이해하고 상세하고 일관된 답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 이야기, 노래 가사와 같은 창의적인 텍스트를 생성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어 대답이 어색하거나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이어 챗GPT를 테스트해봤다.  러브송 가사를 써달라고 했더니 1절, 코러스, 2절, 코러스, 후렴까지 나눠서 결과물을 내놨다. 입이 벌어졌다. 다시 SiFi 단편 소설을 부탁했더니 서기 2087년 AI 프로메테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 소설을 해리포터 스타일로 바꾸어달라 하자 마법사 학교와 다크 마법사가 등장하는 등 정말 해리포터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으로 변경됐다.     최근 챗GPT의 급속한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챗GPT가 명문 MBA 학교인 와튼스쿨의 기말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고 로스쿨 시험도 통과했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많은 양의 지식을 빠르게 학습하면서 결과를 사람의 언어로 도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공개 한 달도 안돼 일일 사용자가 벌써 1000만 명을 넘었다. 매일 1000만 명의 질문과 요구에 응하면서 챗GPT는 더 인간다워지며 쌓이는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AI가 탑재된 로봇이 사람처럼 일하고 말하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AI를 장착한 로봇이 사람 대신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AI 로봇이 더 정교하게 수술을 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반면 AI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숙제나 리포트를 챗GPT로 간단히 해결하면서 교육계엔 빨간불이 켜졌다.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대회에서 우승까지 하고 AI가 작곡한 노래와 가사에 대한 저작권 분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딥페이크 기술로 사진과 동영상을 위조해서 피해를 주기도 하고 수많은 목소리 샘플을 학습한 AI가 특정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특히 자유롭게 AI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불평등도 문제다. 인터넷이 그랬듯 말이다. 더욱이 지금은 베타 버전으로 일반에 공개된 AI 서비스들이 유료화될 경우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게 뻔하다.   이처럼 AI는 빠르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고 벌써 일부 부작용도 나타나지만 이를 통제할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땅치 않다. AI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암호화폐 사례를 보자. 혜성처럼 등장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암호화폐는 기존 통화를 대체할 게임 체인저처럼 보였지만 통제의 부재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각국 정부는 이제야 부랴부랴 암호화폐 규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AI도 암호화폐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장점은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사용 지침을 만들어야 할 때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 칼럼 인공지능 발전 초거대 인공지능 인공지능 시대 해리포터 소설

2023-01-26

[중앙 칼럼] 어바인 선거제 개편 참여해야

‘지역구별 선거제 도입’의 무풍지대였던 어바인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바인 시의회가 지난 10일 선거제 개편 업무를 담당할 위원회 구성을 승인한 것이다. 시의회가 위원회 구성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어바인 시의회는 당초 지역구별 선거제 도입을 꺼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주의 여러 도시가 지역구별 선거제를 도입한 배경엔 케빈 섕크먼 변호사가 있다. 섕크먼은 여러 해 전부터 시 전체를 단일 선거구로 삼고 있는 여러 도시에 지역구별 선거제 도입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편지엔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각 선거에서 소수계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가주 투표권리법에 의거,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압박도 담겼다.   섕크먼의 편지를 받은 도시 중 대다수는 지역구별 선거제를 도입했다. 그에 맞섰던 도시가 소송에서 패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본 것이 주 원인이다.   지난해 3월 섕크먼의 편지를 받은 어바인 시의회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강경하게 맞섰다. 섕크먼은 어바인의 현행 선거 제도가 라티노, 아시아계 시의원 배출 기회를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어바인 시는 당시 시의회 구성원 5명 중 60%인 3명(파라 칸 시장, 태미 김 부시장, 앤서니 쿠오 시의원)이 아시아계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칸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쿠오 시의원이 낙선, 현재 아시아계 시의원 비율은 40%다.   어바인 주민 중 아시아계는 약 43.6%다. 백인은 44.9%, 라티노는 10.7%다. 인구가 적은 라티노의 경우, 시의원 출마조차 어렵다. 아시아계 12만3458명 중엔 중국계가 5만5751명으로 가장 많고 한인이 1만9338명으로 그 다음이다. 아시아계 주민 비율로 보면 시의회 내 아시아계 비율도 40%는 돼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구 30만 명이 넘는 방대한 도시인 어바인시 전체가 단일 선거구인 한, 아시아계 시의원 비율은 언제든 0%로 떨어질 수 있다.   어바인 최초의 아시아계 시의원은 2004년 동반 당선된 강석희, 최석호 시의원이다. 이후 이어진 아시아계 시의원 명맥은 최 전 시장이 퇴임한 2016년 말 끊겼고 시의회는 다시 백인 5명으로 채워졌다. 2년 뒤인 2018년 선거에서 파키스탄계인 파라 칸과 중국계 앤서니 쿠오가 시의회에 입성했지만, 2020년 태미 김 후보의 당선으로 한인 시의원 명맥이 다시 이어지기까진 4년이 걸렸다.   한인이 특정 지역에 밀집 거주하지 않아 지역구별 선거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지만, 타인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어바인시는 지역구별 선거제를 도입하면서 현재 5명(직선 시장 1명 포함)인 시의원 수를 도시 규모에 맞게 7명으로 늘리는 안도 검토 중이다.   어바인보다 인구가 많은 애너하임, 샌타애나는 물론 인구수가 한참 적은 코스타메사, 헌팅턴비치, 가든그로브, 뉴포트비치, 오렌지 시도 7명의 시의원을 두고 있어 시의원 증원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어바인시가 시의원 수를 늘리면서 지역구별 선거를 치르게 되면 한인 후보의 수도 늘 것이다. 현행 제도에선 매 4년마다 시의원 의석 2개를 놓고 10명 내외의 후보가 경쟁한다. 출마를 적극 고려하던 한인이 다른 한인이 나서면 한인 표 분산을 우려해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 이유다.   시의원 수가 늘고 지역구별 선거를 치르면 선거 때마다 도전할 수 있는 의석은 3개로 느는데 경쟁률은 낮아진다.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인지도가 낮고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신인의 정치 참여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최근 부에나파크, 풀러턴에서 한인 시의원이 계속 배출된 것도 결국 지역구별 선거제 도입 덕분이다.   선거제 개편안은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6월 또는 11월 선거에서 주민투표에 회부될 전망이다. 어바인 한인들이 개편 과정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길 바란다. 임상환 / OC취재담당중앙 칼럼 어바인 선거제 지역구별 선거제 선거제 개편 어바인 시의회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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